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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별별 잡소리

하야오옹의 글

http://www.ghibli.jp/docs/0718kenpo.pdf

 
<헌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언어도단>


1. 조금 더 일찍 태어났다면 군국소년이 되어있었을 것

저는 1941년생입니다만, 일본 헌법이 제정되었을 당시의 기억은 없군요. (편집부주: 일본 헌법 공포는 1946년) 그보다도 어렸을 적에는 ‘정말 어리석은 전쟁을 했다’는 실감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본군이 중국대륙에서 잔인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른이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간접적이긴해도 몇 번이고 들었습니다. 동시에 공습으로 얼마나 잔혹한 일이 벌어졌는지도 들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었기 때문에, 바보같은 나라에 태어나버렸다고 생각해 정말로 일본이 싫어졌습니다.

제가 4살일 적에 전쟁이 끝났으니까, 저보다 6살이 더 많은 高畑 감독이나, 3살 연상인 아내와 저의 전쟁 후 경험은 조금 다르네요. 다만 공습은 기억을 하고 있고, 제가 살던 거리가 불타는 것도 보았습니다. 패배했다는 굴욕감만은 있었습니다. 전쟁 후, 미국인들이 잔뜩 와서 모두들 이들을 둘러싸고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인에게 츄잉검이나 쵸콜렛을 받는 것 같은 부끄러운 일은 못해, 라고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지금와서 말하자면, 전쟁기록물 같은 것들도 꽤나 읽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출판된 책에는 태평양전쟁에 대해 '몹시 반성하고 있다'든지 '실제로는 이러했다'같은 말들이 많았습니다. 대포를 쏘는 일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레이다 같은걸 보더라도, 얼마나 적당히 얼빠지게 만든 레이다였던가 라는 식의 이야기나, 전력을 다했는데도 전부 허사가 되어버렸다는 것 같은 이야기들을, 여러 분야의 사람들, 절대 영웅이 아닌 사람들이 쓴 책들이 꽤 많이 출판되었던 것입니다.

기세등등한 이야기 같은 건 정말이지 없었습니다. 군함이 침몰한 뒤 승조원들이 표류하여 여하히 구조되었던가 하는 이야기들을 포함해, 어린이 입장에서도 '진짜 한심한 전쟁이었다'는 기분은 강하게 들었습니다.

후일 로버트 웨스톨(Robert Westall, 1929~1993)이 저술한 <'기관총요새'의 소년들(원제: The Machine Gunners, 1975년 출간> 같은 책을 읽었을 때 '아, 이 사람은 내 선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전시상황에 놓인 소년으로서, 어른들이 '전쟁, 전쟁'하면서도 제대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신과 주변 세계와의 경계를 분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웨스톨씨가 저보다 연상일까요.(편집자주: 웨스톨씨는 1929년생) 그는 63세를 일기로 작고하였습니다.

저는 그의 책을 읽고서 저 자신이 어떤 기질의 소유자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내 목숨보다 훨씬 중요한 대의가 있지 않은가'라든지, '그것을 위해서 죽는다'라고 생각하여 그 쪽 방향으로 쾅-하고 가버리는 타입의 사람인 것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단언코 열혈 군국주의자 소년이 되어있었을 터입니다. 그보다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자원입대하여 전장에서 당황해서 금새 전사해버리고 마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 당시는, 진정 전쟁이란 무엇인가, 를 알아차렸을 때는 죽는 순간이었던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시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특공부대에는 지원할 수가 없어서 선전용 그림이나 만화같은 것을 그리게 되어있었을지도 모릅니다.


2. 아버지는 전쟁 중 비행기 부품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전쟁에 대한 기억은 상기한 바와 같지만, 세상의 돌아가는 양상이 소위 전시상태로 변한 것은 쇼와19년(1944년) 이후, 국가 전체가 히스테릭하게 변모한 다음부터였습니다. 단지, 저의 아버지는 현실주의자에 니힐리스트로써, '천하국가, 나는 모른다'는 식의 인물이셨기에, 아버지의 말씀만 듣고 있노라면 또 전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관동대지진 당시 구로다구에 있던 <육군피복창>이라는, 인명피해가 가장 많았던 곳에서 탈출하여 생존한 사람입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직 9살이었는데도 여동생의 손을 이끌고 도망쳤다는 것이 자랑거리셨습니다. 전시 중에는 도쿄대공습 다음날 친척의 안부를 묻기 위해 도쿄에 들어갔더랬습니다. 그렇기에 두 차례나 층층이 쌓인 시체더미들을 목도한 것입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물으면, 小津 감독의 전쟁 전 영화인 <청춘의 꿈 지금 어디에>와 판박이여서, 철저한 찰나주의자. 전쟁 중에는 병에 걸린 백부를 대신하여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했습니다. 지인들 모두가 "이제 이 전쟁은 졌으니까 그만두라"고 말리는데도, 쇼와20년(1945년)이 되어서도 은행에서 대출을 내서 투자를 했었습니다.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아버지는 세계 정세가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군요. "전쟁은 내가 하고 있는게 아니다. 장사로 놓고 보면 지금 고객이 있어서 주문이 있으니까, 여기에 부응해서 (물건을) 만들면 돈을 벌 수 있다."며 계속 공장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전혀 후회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대국적인 관점의 부재.

전쟁 후에는 당연히 군수공장 같은걸 계속 하고 있을 수 없으니까, 남아있는 듀랄루민(duralumin) 소재로 금새 똑하고 부러지는 스푼 같은, 어중간한 물건들을 만들고 계셨지만, 물자가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그것을 단숨에 만들어서 다 팔아치운 매상을 가지고, 창설된 직후인 노동조합을 설득하여 멋지게 회사를 정리한 것입니다. 그 뒤에는 공장만 남았으니까 거기서 댄스홀을 운영한다든지 했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손님이 왔지만 宇都宮(지명)에서도 기차를 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鹿沼(지명)라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자 손님도 끊어져 망했습니다. 그리하여 도쿄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블루스를 추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너, 춤도 못 추냐?"라고 말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전쟁 전, 쇼와10년(1935년)은 세계 경제대공황으로 불경기였다고들 합니다만, 실은 그 시기가 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일거리가 있어서 자금만 보유하고 있으면 디플레이션이니까 편하게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도 "이야, 정말이지 그 때는 진짜 좋았지."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도쿄의 일부만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러한 아버지가 전쟁에 대하여 뭐라 말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스탈린은 일본 국민에게는 죄가 없다고 했다."그리고는 끝입니다. 저는 "아버지에게도 전쟁책임은 있을겁니다."라고 말해 다퉜습니다만, 아버지는 그런 것(전쟁책임)을 짊어질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인과 친구가 되어서는 "집에 놀러와"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미국이 훨씬 나아. 소련은 싫다."고 하셨습니다. 왜 소련이 싫다고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자유가 없는게 싫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께선 자유롭게 사셨으니깐요(웃음).


3. 내가 일본을 다시 본 것은 30대가 된 후부터

지금 半藤一利씨가 저술한 <쇼와사>를 읽고 있습니다만, 이건 뭐 너무 괴로워서. (왜냐하면)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은 무도한 짓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다른 나라에 가서 그러한 전쟁을 벌였나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길은 없었는가, 만주사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생각합니다. 러일전쟁이 끝났을 때, 일본은 요동반도를 놓고 "이건 역시 중국 영토니까 돌려드릴게요"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발상은 일본 가운데 일말도 없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시대였으니만큼 세계 가운데서도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중국의 주변에는 소련도 있었지만, 영국도 있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프랑스도 네덜란드도 미국도 있어서, 세계 (강대국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인간이 밟아왔다는 사실을 제쳐두고 일본만이 악당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해서 "맨 나중에 발을 담갔을 뿐인데 왜 나만 잡는가?"하고 말해도 이상한 일입니다. "너는 강도였어"라고 하는 것이니까요. 만주에 간 지인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식으로 위세를 부리고 다녔는가 하는 얘기도 어머니로부터 꽤나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진짜 일본은 못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일본국가는 부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국의 등불을 위해 싸워라'는 식의 러시아 민요를 부르면서 '그런 조국이 있으면 좋을텐데'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러시아가 좋으냐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제 안에 너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 자신보다도 소중한 것이 뭔가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가 일본을 다시 본 것은, 30대가 되어 처음 유럽에 갔다 귀국했을 때였습니다. 유럽이라고해도, 아주 일부인 스웨덴을 어슬렁어슬렁 거렸을 뿐이었습니다만, 돌아와보니 저 자신이 얼마나 이 섬의 식물이나 자연을 좋아하는지 잘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일본은 너무나 아름다운 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나 일장기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풍토란 멋진 것이구나, 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빈곤하거나 풍요롭거나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풍부한 환경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지신궁의 대단한 숲이 있는데, 이것이 사람이 만든 숲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런 토지의 힘을 가진 섬에 있다는 것을, 실로 서서히 조금씩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도 半藤씨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지만, 일본의 근대역사는 40년 간격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865년 개국으로부터 40년만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했고, 막대한 채무가 남았습니다. 그 뒤, 40년을 들여 군벌정부가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85년 정도까지의 40년 동안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잘 해내온 것처럼 보입니다. 버블이 붕괴한 다음부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몰락해가는 40년이 되고 있습니다. 半藤씨의 의견이 옳다면, 40년동안 잃어버려야하니까, '잃어버린 20년'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20년 정도는 더 잃어버리게 됩니다(웃음).

역사라는 것으로 말하자면, 호리다씨는 "역사는 앞에 있다. 미래는 등 뒤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눈앞에 있는 옛 일 뿐입니다. 일본 군벌의 역사를 보고싶지 않은 것은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정치가를 하려면, 그 정도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아서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 통용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4. 여태까지 계속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계속 거짓말을 하는 편이 좋다

헌법을 개정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선거를 치르면 득표율도 낮은데 그런 정부가 혼란을 틈타 거의 즉흥적인 방법으로 헌법을 개정하려고 하다니 언어도단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법적으로는 제96조의 조항을 개정해서, 그 뒤에 이러쿵저러쿵 해서 성립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사기입니다.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나라의 장래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수의 의견이면 옳다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논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보면, 살짝 본심을 흘려서는 큰 소동을 야기해놓고선 어물어물하면서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는 식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고있으면서 정부 수반이나 정당대표들의 역사감각 부재와 올바른 견해의 부재에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생각이 부족한 사람은 헌법 같은 것을 손대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고서, 이따금 생각이 미친 일이든지,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모리배들의 이야기만을 듣고서 방침을 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놓고는 국제적인 무대에 내놓아보니까 일제히 쏟아지는 비난을 받고서야 황급히 "무라야마 담화를 기본적으로는 존중한다"는 따위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기본적으로'란 무슨 의미일까요? "당신은 그것을 전면 부정하지 않았던가?"라고 생각합니다. 아베노믹스도 분명 근시일내에 어그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헌법 제9조에 비추어보면 자위대는 아무래도 이상한 것입니다. 이상하지만 그 편이 좋습니다. 국방군으로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직업군인이라는 공무원의 대군으로서 정말로 시시해지니까요. 오늘날, 자위대가 이곳저곳의 재난 발생시에 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역시 이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위대원들은 일을 잘 처리하고 있고 예의도 단정합니다. 이라크에 부득이하게 파병되어서도,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고,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귀환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걸프전쟁 이후에 페르시아만에 소해함(기뢰제거함)을 파견해야 했습니다만, 기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보이는 해역에서 묵묵히 소해작업을 진행하고, 작은 함정이었으니까 꽤 고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조용히 귀국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아무런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습니다만 감동했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전쟁의 불길이 번지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때는 제대로 고려해서 헌법 조항을 바꾸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자위를 위해서 활동하려는 일들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행동에 나서는 것은 반드시 (다른 국가보다) 늦게 되겠지만, 우리 쪽에서 먼저 손을 쓰지는 않고, 과잉방어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국제정치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금새 농락당하게 됩니다. 설사 전쟁이 벌어지게 되더라도, 그 편이 여전히 낫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스위스나 스웨덴 같은 중립국을 동경한 것은 사실입니다. 평화로운 나라가 있고 하이디가 뛰어다닌다는 식의 이미지만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비무장중립이라는 것은 현실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현실주의적으로 생각해봐도 일정한 정도의 무장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이 이상은 '잠깐 기다려'하는 것이 역시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바보같은 일이긴 합니다만, 최신식의 전차 정도는 얼마간 만들어두면 됩니다. 실은 건담이라도 만들어서 진행시키면 되잖아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웃음). "실제 능력은 비밀이니까 털어놓을 수 없다"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이건 농답입니다만.

여하튼, 여태까지 이렇게나 거짓말을 해온 것이니까 계속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의) 정합성을 추구하는 사람들로서는 이를 통해서 "전쟁 전의 일본은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나빴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위안부 문제도 각각의 민족의 긍지가 걸려있는 문제니만큼, 제대로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합니다. 영토문제는 반으로 나누든지, 아니면 '양국이 공동으로 관리합시다'하고 제안합니다. 이 문제는 아무리 마찰을 빚어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도 수습될 리가 없습니다. 과거 일본이 팽창했던 것처럼, 팽창하고 있는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전쟁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 보다도 지금은, 일본의 산업구조를 변혁해 나가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자력발전소가 널려있는 나라에서 전쟁같은 것을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중국이 팽창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내발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모순은 지금으로서는 세계의 모순인 것이니까, 그저 군비를 증강한다든지 국방군을 만든다든지 하면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 중요한 것은, 산업구조를 어찌할 것인가의 문제다.

법치국가로서 인간의 권리를 지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본헌법의 기축입니다만, 역사학자 堀米씨 등의 저술에 따르면 일본에는 본래 기본적 인권의 근거가 되는 사상이 없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다들 그렇게 얘기하니까 '기본적 인권'이라고 쓰고 있지만, 그 발상은 일본 안에는 없다는 뜻입니다. 자, 그럼 어쩔 것인가 생각하다가, 堀米씨가 돌아가시기 전에 "불교의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만물에는 불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시바 료타로씨는 "가마쿠라 막부시절 무사의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고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또한, 호리다씨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의 전통 속에 근거가 될 수 있는 사싱이 없더라도, 역시 기본적 인권보다 더 나은 사고방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서 그런 것 없이도 잘 지내올 수 있었습니다만, 세계화/국제화되는 시기에는 공통으로 사용하는 말을 가져야 합니다. 인권이라는 사고방식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본 자신의 문화적 전통이나 다양한 것들 가운데서 어떻게든 찾아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현재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산업구조를 어찌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먹는 것이나 입는 것, 사는 것은 스스로 만든다"는 사상을 갖지 않고, 그저 소비만하고 나중에는 전원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식의 그런 나라여서는 어찌할 도리도 없는 것이고, 잘 해나갈 수 있을리도 없음이 자명합니다. 일을 해서 숫자만 받아가지고는, 그것으로 이것저것 사거나 사용하고 있으면, 여러 (현)실감이 점점 멀어져 갑니다. (현)실감을 손에 넣으려고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일정량 밖에 없으니까, 실제로는 일에 쫓겨서 기진맥진한 채로 귀가해서는, 보고 있는 것이라곤 텔레비전이나 메일(문자) 뿐, 영문도 모르고 사는 식으로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요지는, 오늘날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시장중심의 방식은 안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3개에 100엔하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가. 자국에서는 아무도 만들지 않고 있는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는 버리고, 이게 이상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서야 잘 되어갈 리가 없습니다. 일본은 어느 시기까지는 아들딸을 위해 어머니가 입을 옷을 바느질하곤 했었지만, 오늘날에는 바늘도 실도 모르는 어머니들이 잔뜩 있습니다. 불도 아마 모르겠지요. 집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라이타도 없고 성냥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무리지요. 밧줄로 매듭을 매는 것도 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징병제를 실시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바보가 출현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저보다 나이가 어릴테니 자신이 징병되어서 고생을 해봤을 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50세든 60세든 간에 "당신부터 먼저 (군대를) 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기가 가고싶지 않다면 자식을, 자식이 없다면 손자를 보내라. 그렇게 하면, 징병제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테니까요.

"나는 제대로 하고 있지만 남들이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발상을 버리십시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다면 그 정도는 남들도 다들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습니다. 징병제도란 최저의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징병제도가 얼마나 젊은이들을 황량하게 만들고 있냐 말입니다. 대포 수만큼 줄 세워서 진행하면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전쟁을 생각해봐도 이렇게 안개가 자욱이 낀 곳에서 전쟁을 해서 어쩔 것입니까.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일본은 말이지요.


6.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일은 하지 마라

헌법은 목표이기 때문에 그 조문을 개선하면 빈곤층이 없어진다든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그 헌법을 지키며 실시해온 경제건설 덕분에, 다른 나라 국민들로부터 수탈한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사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만약 건강보험제도가 없었다면, 의사를 찾아갈 수 없는 사람이 무척 많이 생겼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 업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치과의사를 찾아갈 수 없었겠지요(웃음). 진정 어느 시기까지는, 전후에 세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익 정치가들도 상당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던 것이, 경제적으로 이제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상황에 이르자, "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든지 "생활보험제도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라는 식으로 여러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떠한 제도라 할지라도 악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으니만큼, 그것을 예로 들어 제도를 폐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다만, 어느 지자체나 할 것 없이 재정상태가 경직화되어 있습니다. 복지 관계만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그것은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재정지출을 봐도, 이건 엄청나구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어디서부턴가 조금씩조금씩 가난해져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그건 이제 그렇게 되어 있는 일이니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래의 희망같은 것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든지, 친구들과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을 보낸다든지,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니 기쁘다든가, 이제부터 사람들은 그런 것들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장래의 보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런 말 해보았자 아무런 격려도 되지 않겠지만(웃음). 하지만 사람들은 본래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저는 일하는 곳 근처에 보육원을 만들었습니다만, 이건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저에게 있어서 좋았다는 것입니다. 아가들이 졸졸 걷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제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면, 그건 암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서도, 그럼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 하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역시 축복하지 않으면 안되고, 실제로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될거야"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구 자체는 감소해도 괜찮습니다. 일본의 적정인구는 3,500만명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농업기술의 진보를 감안하면 조금 더 부양할 수 있으리라 생각은 합니다만, 그래도 5,000만명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구가 1억명 이상 있으니까 애니메이션 같은 것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장이 작아서야 산업이 성립하지 못하니까요. 인구가 줄어들게되니까 이후로는 애니메이션 산업도 성립하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웃음). 그래도 무리라면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고 "거인군이여 영원하라"라든지 하는건 우스꽝스럽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지브리여 영원하라"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즈키씨가 쓰러지면 전부 죽습니다. 스즈키씨 허리가 나간다든지 하면 전부 끝장입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자면, "유행하고 있는 일은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도 그렇습니다만, 유행하고 있는 것을 쫓아가면 이미 타이밍을 놓칩니다. 오늘날, 모두가 입을 열기만 하면 "불안하다"고 합니다만, "그럼, 예전에는 불안하지 않았나요?"라고 묻고 싶어질 정도로, 기실 상황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게 일하면 됩니다. 일할 곳이 없다면 스스로 만들면 됩니다. 불안이 유행하고 있으니까 불안해집니다. 그러니까, 유행하고 있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끝)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이 양반 최근작은 여러모로 논란이 많지만 이 글은 참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