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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무반동포 만들던 노인


벌써 40여일 전이다. 내가 갓 100일휴가를 나간지 얼마 안 돼서 복귀 할 때 얘기다. 동서울 가는 길에, 강변역으로 가기 위해 차를 내려야 했다. 테크노마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무반동포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무반동포를 한 정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구십미리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만드는 것 같더니, 차가 떠나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다듬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만들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무반동포란 뷁발쏘면 뷁발 들어가야 무반동포지 폐쇄기로 후폭풍만 나가면 무반동포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만든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복귀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만들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무반동포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M110 가늠자꽂이에 가늠자도 안 들어가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만들던 것을 숫제 길가에다 뒷다리 앞다리를 세워놓고 태연스럽게 DMB로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보고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무반동포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총이다.

 

100일 휴가에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商道德)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테크토마트 7층 전자상가를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흰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부대에 지연복귀해서 무반동포를 내놨더니 중대왕고 병기계원 김병장은 참 잘 만들었다고 야단이다. 부대에 있던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김병장의 설명을 들어 보니, 총열이 약하면 격발을 하다가 유폭이 잘 되고 같은 탄약이라도 강선이 녹아내리며, M110가늠자 꽃이가 찌질하면 가늠자 결합이 잘 안 되고 지지링이 부러지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엣날부터 내려오는 무반동포는 혹 앞다리가 떨어지면 앞 다리를 대고 발톱과 나사를 조여놓으면 다시 붙어서 좀체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앞다리는 발톱이 한 번 분해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안전지레를 연결쇠뭉치에 결합할 때, 질 좋은 윤활유를 잘 발라서 기름끼를 매끈하게 제거한 다음에 조여 결합한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에 비로소 안전지레를 F로 돌려놓고 격발을 한다. 이것을 FM안전 검사한다고 한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PX에서 WD-40을 사 대강 뿌리고 끼운다. 금방 끼워진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훈련이라도 한 번 뛸라치면 폐쇄기 손잡이를 한 번만 잡았다 닫아도 270도를 쉽게 돌아가 수풀 속에 톡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FM 안전검사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탄약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KM371 a1 대전차고폭탄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신형신관이나 작약을 넣은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신형신관이란 단순한 순발신관 대신 기저부의 압전기 충격으로 작동하는 탄두발화 탄저신관을 장착한 것이다. 작약도 눈으로 보아서는 TNT인지 COMP B인지 C4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TNT에 왁스와 RDX를 섞어 COMP B를 일부러 만들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보급받을 병기 계원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공예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무반동포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이등병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크고 아름다운 화기가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냉동에 버디언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휴가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테크노마트의 7층 전자상가를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창문 안으로 원더걸스 컴백 공연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노인이 저 삼성 파브LED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무반동포을 만들다가 유연히 창문 안에 뮤직뱅크를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공이짚덮개는 꽉 조여져 있으며 폐쇄기는 부드럽게 개폐되며..!' 하는 장비검사의 문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부대 안에 복귀했더니 막내 신병이 무반동포를 뜯고 있었다. 전에 무반동포를 온갖 연장을 다 동원해 총열만 덩그러니 남기고 특수 분해하던 생각이 난다. 특수분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안전검사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이병 xxx 무반동포의 내부명칭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며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40여일 전 무반동포 만들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